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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시
과정
1950.10

아시아 및 아랍 13개국이 UN정치위원회에 한국전의 정전을 위한 3인위 설치안 제출3일 정전위원회 발족및 신정전5개항 채택

* 신정전 5개항


1. 즉시정전
2. 영구평화를 위한 휴전중의 행동
3. 적당한 단계에 외국 군대의 철수
4. 휴전중 UN의 한국행정 감시
5. 극동문제 해결을 위한 미영소중공의 회합
* 상기내용에 대해 소련과 중공의 반대로 인하여 최초의 정전협상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음.
1951.5

-서울 재탈환(‘51년 3. 16)후 미국무성 및 국방성은 한국전 휴전문제를 공식거론
-트루먼 대통령은 참전 유엔군 회원국들과 협의 후 한국전 휴전제의 관련 성명서를 발표.
-이승만 대통령의 휴전반대 특별담화 발표

1951.6
-주 유엔소련대사도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
-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회 등 우리 민족은 38선상에서의 휴전에는 반대
1951.7
-유엔측과 공산측의 수정안으로 예비회담이 개최
-1951년 7월 10일 제1차 정전회담 개성서 개최
*유엔군측은 한국전의 정전 및 차후 이의보장에 대해 토의할 것을 언급하는 한편 공산군측은 38선의 군사분계선화 및 외국군의 철수를 주장, 정치적 문 제등으로 일관함.
1951.10

-유엔측이 회담장소 이전의사를 밝히자 소련측이 판문점 지역을 제안
-연락장교단 접촉을 판문점 근방에서 가진 후 새로운 회담장소로 판문점을 정하게 됨.
*판문점의 원래 지명은 “널문리“인데 이를 중국어 표기에 용이토록 하기 위하여 판문점으로 개칭함.

1951.11
합동분과위원회에서 쌍방 수석대표는 현전선을 잠정적으로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고 전투를 중지할 것이 합의되었으며 이 결과 서부지역에서 개성과 장단평야 일부가 공산측에 넘어가게 됨
1951.12
포로 석방과 관련된 문제 제기
*유엔측 : 쌍방의 전포로 석방
*공산측 : 쌍방 포로 전체를 일괄 교환
->포로의 자유 송환시 공산측 포로들이 송환을 거부할 것이 예상되며 그 결과로 차후에 전선의 북괴군이 자진해서 유엔군에 투항할 것을 염려하여 포로의 일괄 송환을 주장함.
1952.12
유엔에서 포로처리 문제에 대한 인도안이 가결됨(찬성54, 반대5)
*인도안 주요 내용
-중감위 체코, 폴란드, 스웨덴, 스위스 대표로 포로송환위원회 구성
-포로 송환을 반대하거나 강제 송환 금지
-포로 전원은 비무장지대로 이전, 송환위원회 인도
-송환을 불 원하는 포로들은 휴전성립 90일 후에 정치회담에 이관
1953.5
쌍방 포로인원 송환 실시
-아측 인수인원 : 784명
-북측 인수인원 : 663명
1953.7
유엔측 사령관, 북한군 총사령관 김일성, 중공지원군 사령원 간의 한국전 휴전협정에 서명